한정호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이면 늘 졸고 있고 밤이면 다들 자고 있는 기숙사에서 혼자 일어나 야설을 읽는 그녀! 그러면서도 그녀는 수재들이 모여 있는 대현외고에서 전교 10등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 정호와 달리 반듯하고 예의바르고 규칙을 준수하며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는 남학생 박성준 그는 3년 내내 대현외고의 반장과 학생회장을 역임했던 모범생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몇 년 뒤 한 회사의 신입사원 연수에서 다시 만났다. 정호는 이 만남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여섯 군데의 대기업에 모두 합격한 성준이 그 중에서도 제일 별로인 대진그룹에 입사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는 한정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대진을 선택했다. 그는 왜 그토록 그녀를 만나려고 했을까? 왜?! - 본문 중에서 - 성준은 만화책에 빠져 반응이 없는 정호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정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정호의 눈과 마주쳤을 때 성준은 그녀의 눈빛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뭐랄까 달뜬 것 같기도 하고 흥분한 것 같기도 한 묘한 눈빛이었다. “뭐해?” 문득 정호가 보고 있던 만화를 내려다본 성준은 너무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만화 속에는 남녀 사이의 적나라한 정사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당황한 성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굳어져 있었다. 정호도 자신만큼 당황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성준의 착각이었다. 성준을 빤히 올려다보던 정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야 너 남자랑 여자가 이런 짓을 한다는 거 알고 있었어?” 정말 어이가 없었다.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재미있는 것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성준의 눈앞에 만화를 들이미는 정호 때문에 성준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야 누가 이딴 저질 만화를 보래?” 태연한 척 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성준의 얼굴을 붉어졌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러나 정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호는 갑자기 만화를 몇 페이지 앞으로 넘기더니 그 페이지를 펼쳐서 성준에게 보란 듯 내밀었다. “근데 이거 말이야 이거 정말이야?” 정호가 내민 페이지를 본 성준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릴 뻔 했다. 그 페이지에는 다소 과장된 그림으로 남자주인공의 바지 위로 발기된 페니스가 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남자들은 정말 흥분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처럼 정호는 성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김 찬주 두 번째 로맨스 소설을 출간한 새내기 작가.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을 때 제일 행복한 사람. 앞으로도 계속 로맨스 소설을 쓰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 이메일 sran529@hanmail.net 출간작 연애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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